“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유명한 법언(法諺)이 있다. 이는 법원의 판결이 늦어지면 정의를 실현하는 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90대 노인이 사기를 당해서 민사소송을 했는데 판결이 10년 후에 나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는 모든 소송에 해당되겠지만, 특히 상장기업과 관련된 소송은 그 결과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 수많은 주주들과 이해관계자들이 있기 때문에 빠른 판결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2년간 지속되어 온 국내 3대 유제품 기업인 남양유업의 대주주 홍원식 회장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 간의 주식양수도 계약 이행 소송이 이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지배주주가 바뀌는 것은 기업가치 및 주주가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변화인데, 이렇게 중대한 변화에 대한 법적인 판단이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고 수년째 계속됨에 따라 소수주주를 포함한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은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다.

소송 기간 동안 남양유업은 경영진이 실질적으로 부재한 소위 주인 없는 기업이 되어버렸다. 인구 감소에 따른 산업의 구조적인 위기를 경영 능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마당에, 대주주의 법적 분쟁으로 인해 기업은 방향을 잃고 있다.

소송이 시작된 후 대표이사는 사의를 표명하여 실질적으로 부재한 상황인데 이를 대체할 사람이 없어 등기이사 및 대표이사직은 유지되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며, 사외이사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급여도 받지 않고 있다.

다른 사내이사들은 소송의 당사자인 대주주 일가여서 실질적으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남양유업의 경쟁사는 이익을 내고 있는 데 반해 남양유업은 영업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다. 소수주주들은 주가 저평가가 장기간 지속되어 고통받고 있으며, 회사의 임직원들과 소비자들, 낙농업체 등도 피해를 입고 있다.

이 재판에 있어 이번 주 또는 다음 주 17일은 매우 중요한 날이다.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을 내려 재판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시한이 7월 17일이며, 이 날짜가 지나기까지 아무런 판결이 나오지 않는다면 재판 결과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

물론 7월 17일 이후 1~2주 후나 한 달 후에도 결과가 나올 수 있고 실제 그러한 사례들도 많으며, 이 사안 역시 빠른 결론이 예상되는 사안이지만, 이해관계자들은 또 다시 불확실성에 직면해야 한다. 법원의 조속한 판결만이 이해관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다.

그나마 1, 2심에 도합 2년이 안 걸린 남양유업의 경우는 다른 사례들에 비해 소송 진행이 빠른 편이다. 지난 3월 글로벌 승강기 회사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배주주인 현정은 회장에 대해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소송은 2014년에 제기되어 최종 판결까지 무려 9년이나 걸렸다. 법원 판결이 기약 없이 지연됨에 따라 불확실성 및 주가 하락으로 주주들이 겪은 피해는 보상할 길이 없다.

코스닥 상장사인 상상인은 대주주인 유준원 대표가 2020년부터 3년째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데, 3년이 지난 아직도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상상인은 저축은행을 보유한 회사이기 때문에 이 재판의 결과에 따라 저축은행 대주주의 적격성 심사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대주주 및 경영진이 바뀔 수 있는 사안이므로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그러나 재판이 기약 없이 지연되면서 회사는 방향을 잃고 있다. 주가는 연일 수년래 신저가를 갱신하고 있으며, 최근 2개 분기 실적도 적자 전환하였다.

주가가 낮아지자 주주들이 자사주 매입 등의 주주환원을 요구해도, 대주주가 과거에 이행했던 자사주 매입과 관련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어서 자사주 매입을 하기가 힘들다고 답한다. 이 회사 역시 재판 지연의 피해를 일반주주들이 고스란히 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상장기업의 주주들은 법원의 일정까지 봐 가며 투자해야 하는 처지다. 법원은 서두의 법언을 되새겨 여러 기업들의 수많은 주주들과 이해관계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속히 판결을 낼 필요가 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