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는 자기책임의 원칙 하에 이뤄지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은행이 어렵게 번 돈을 VIP 고객의 투자 손실을 보전하는데 써도 괜찮은 걸까.
우리은행이 최근 홍콩빌딩에 투자한 부동산 펀드의 상각 처리와 관련해 소비자 신뢰 회복을 명분으로 고객의 손실을 일부 보전한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펀드는 지난 2019년 미래에셋 계열 멀티에셋자산운용이 조성했다. 투자처는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빌딩으로 홍콩 주룽반도에 위치한 랜드마크 오피스 빌딩이다.
1조원이 넘는 투자에 당시 싱가포르투자청(GIC), 도이체방크 등 글로벌 유수 기관투자자가 참여했다. 국내에선 미래에셋이 유일하게 중순위(메자닌)로 참여했다.
우리은행은 이 펀드를 30여명의 VVIP고객에게 765억원어치를 팔았다. 최소 투자금액이 10억원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선순위 대출자인 GIC와 도이체방크가 빌딩 매각에 나섰고 이들은 원금을 회수했지만 멀티에셋 등 나머지 투자자들은 대규모 손실을 보게 됐다.
멀티에셋자산운용은 조성한 펀드 자산의 90% 내외에서 상각 처리하기로 했고 우리은행은 고객 손실을 일부 보전해주기로 결정했다.
이례적인 결정인 만큼 여러 의문이 남는다.
우선 '불완전 판매'가 아닌데 왜 굳이 보전을 해주는가다. 오히려 이 보전 결정이 불완전 판매임을 자인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자본시장법 역시 손실 보전을 엄격히 규제한다. '건전한 거래질서를 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손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전해 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불완전 판매인지 아닌지는 우리도 현재로서 확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법무법인의 검토를 거쳐 (보전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내려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불완전 판매'라는 것이 워낙 고무줄 잣대인 만큼 펀드를 판매할 때 '불완전 판매'의 요소를 제로로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업계 종사자들은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 판매'가 이뤄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이런 문제가 불거졌을 때 '불완전 판매'가 아니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끝까지 다투는 것이 정도(正道)고 주주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쟁송으로 가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수년이 소요된다. 사회적 비용을 줄여보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비용을 들여 쟁송거리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잘못된 선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런데 보전액은 피해액의 40~80%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적지 않은 돈이다. 수조원의 펀드를 팔아야 벌 수 있는 돈이다. 과연 본인 돈이라면 이토록 허투루 쓸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은행은 정말 공공재인 것인가.
'불완전 판매'가 법정에서 인정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경영진이 쉽고 값비싼 길을 택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생기는 대목이다.
가뜩이나 우리은행 주가는 올 2월 윤석열 대통령의 공공재 발언으로 폭락한 이후 회복을 못 하고 있다. 당장 종목 게시판에는 "우리은행은 소액주주는 안 무섭고 VIP는 무섭냐"라는 말이 나왔다.
아울러 이번 결정이 나쁜 선례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조치로 '우리은행은 판매한 펀드가 크게 손실이 나면 보전해 준다'는 시그널을 고객들에게 줄 수 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불완전 판매'다.
네티즌들이 근래 자주 쓰는 밈(meme)으로 '누칼협'이란 단어가 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함?'의 줄임말이다. 다소 험악하고 비정한 조롱이지만 적어도 투자의 세계에서는 이 주장을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은행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구시대적 마인드 대신 ‘투자의 자기책임원칙’을 고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지주 주식에 투자한 주주에게 배당으로 줄 돈을 홍콩펀드에 수십억 투자한 VVIP 고객에게 내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