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매각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합병 시너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오는 10월 말까지 시정조치안을 확정해 EU 집행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EU 심사를 위해 아시아나 화물사업부를 매각하고, 아시아나와 중복으로 운영하는 4개 노선 슬롯을 EU에 반납하는 시정조치안을 담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 5월 EU 집행위는 대한항공에 경쟁제한 우려 해소 방안을 담은 시정조치 방안을 제출하라고 통보한 바 있다. EU 집행위는 대한항공에 중간 심사보고서를 보내 유럽 전 노선에서 화물 운송 서비스 경쟁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인천~파리, 인천~프랑크푸르트, 인천~로마, 인천~바르셀로나 노선에서 승객 운송 서비스 경쟁이 위축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두 회사가 합치려면 해외 경쟁국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두 회사의 합병은 현재 EU, 미국, 일본 당국의 심사가 남은 가운데 한 곳이라도 불허하면 합병이 무산된다. 업계에서는 EU 심사 결과가 합병 성사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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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를 매각할 경우 반쪽짜리 합병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항공 산업 경쟁력 강화는커녕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화물사업은 지난해 매출 3조원을 올린 알짜사업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의 화물사업 매출은 7조7200억원으로 양사의 화물 사업 규모는 10조원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반쪽짜리 합병 대신 제3자 매각, 유상증자 등 플랜B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지난달 발표했다.​

조종사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산업은행은 인수합병을 핑계로 대한항공의 독점체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라며 "여객 운임이 오르고 화물 단가가 치솟으며, 독과점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기업들에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와 국민의 유무형 자산인 운수권을 손쉽게 외국에 넘기는 매국 행위를 중단하라"며 "채권단이 진정 국익을 위한다면 슬롯과 화물 부분 등 아시아나항공의 경쟁력을 온전히 보존하고, 대한항공이 아닌 제3자 매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나항공 주주들 사이에서도 합병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아시아나항공 한 주주는 종목 게시판에서 "대한항공과의 합병으로 독점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슬롯 반납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 등이 우려된다"며 "합병 추진을 취소하고 대주주 위주로 차등감자 후 유상증자하거나 일반 공모를 통해 부채비율이나 낮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한항공이 합병 승인을 위한 마지막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합병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100% 전력투구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며 "국내 항공산업 전체로 봤을 때는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합병 승인을 통해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시장에 내놓더라도 새로운 인수자가 나올지는 미지수로 합병으로 가는 과정은 산 넘어 산이다. 현재로서 EU 집행위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항공이 합병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경영권 방어와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2020년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조건으로 산업은행으로부터 8000억원의 자본을 유치했다.

조 회장은 당시 대한항공의 최대주주인 한진칼 지분을 두고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3자 연합)과 경영권 분쟁 중이었다.

산업은행이 우호 주주로 등장하면서 3자 연합은 경영권 다툼에서 물러났다.

만약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이 무산되면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을 보유할지 미지수인 셈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EU 집행위에 제출하는 시정조치안에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안이 포함되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며 "플랜 B 없이 합병을 무조건 성사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