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SM엔터테인먼트(이하 에스엠) 최대주주에 오른 카카오 경영진이 사법 리스크에 휩싸였다. 인수경쟁 과정에서 하이브 측의 공개매수를 막기 위해 시세조종을 했다는 혐의다.
사법리스크가 터지면서 카카오그룹 내 모든 상장사 주가는 동반 급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카카오의 금융범죄가 확정될 경우 인터넷전문은행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계열사인 카카오뱅크 지분도 강제 매각된다.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사진=카카오)
23일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에스엠 주가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으로 출석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카카오가 에스엠 인수 과정에서 주가를 의도적으로 조종했다고 보고 카카오 경영진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서울남부지법 김지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의혹의 핵심 인물인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에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다만, 함께 구속영장이 신청된 강호중 카카오 투자전략실장과 이준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영장청구는 기각됐다.
피의자들은 올 2월 에스엠 경영권 인수전 당시 경쟁 상대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2400억원가량을 쏟아부어 에스엠 주가를 하이브 공개매수가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전 되짚기
의혹의 신호탄은 하이브가 지난 2월 16일 기타법인이 IBK투자증권 분당지점을 통해 에스엠 주식을 대량매입한 거래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하면서다.
에스엠 인수전은 올 1월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는 얼라인파트너스가 이수만 에스엠 창업자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과 에스엠의 내부거래 문제 등을 지적하며 시작됐다.
경영권에 위기를 느낀 이 창업자는 지난 2월 하이브에 지분 14.8%를 매각했으며, 이에 더해 하이브는 같은 달 10일부터 3월 1일까지 에스엠 보통주 595만1826주(발행주식수 대비 25.00%)를 1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했다.
하지만 에스엠 인수를 노리던 카카오가 하이브의 공개매수 기간인 지난 2월 28일 하루에만 1200억원을 투입해 이날 거래량의 3분의 1(발행주식수 대비 5.54%)에 달하는 에스엠 주식을 매집하며 주가를 9만8500원에서 13만1900원까지 급등시켰다.
투자자로서는 시장가보다 낮은 공개매수(12만원)에 참여할 유인이 사라졌으므로 하이브는 공개매수 결과 당초 목표치인 25.00%(595만1826주)에 크게 못 미치는 0.98%의 지분만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카카오는 하이브의 공개매수 기간 중 특정 세력과 결탁해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가 CJ그룹 미래전략실에 근무할 때부터 친분이 있던 사모펀드(PEF)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이하 원아시아)'와 그 펀드가 출자한 '헬리오스 1호 유한회사'가 지난 2월 16일 IBK투자증권 판교점을 통해 800억원(2.9%)을 웃도는 에스엠 지분을 매집한 것이다. 카카오와 원아시아 사이 특수관계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진다면 카카오는 5% 이상 지분보유 상황 공시라는 자본시장법 위반 처벌을 받게 된다.
카카오는 하이브가 공개매수에 실패한 직후인 지난 3월 7일부터 21일까지 곧바로 에스엠 보통주 1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하이브는 3월 12일 에스엠 인수절차 중단을 선언했으며, 카카오는 에스엠 지분 39.91%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등극했다.
◆카카오 법인 형사처벌 시 카뱅 대주주 자격 잃어
카카오뱅크 로고. (사진=카카오뱅크)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카카오의 에스엠 시세조종 혐의와 관련해 카카오에 자본시장법상 양벌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해당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양벌규정은 법인의 대표자나 종업원 등이 업무와 관련해 위법행위를 할 경우 법인에도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한 조항이다.
카카오 경영진의 시세조종 책임이 카카오 법인에 적용되면 카카오는 인터넷전문은행 계열사인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적격성을 박탈당한다.
현행법상 비금융회사가 보유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지분 한도는 의결권 기준 10%며,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경우 최대 34%를 보유할 수 있다.
금융위 승인요건은 해당 주주가 최근 5년간 금융 관련 법령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금융위의 승인을 받아 카카오뱅크 지분 27.2%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형사 처벌을 받게 될 경우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승인을 박탈당해 보유 중인 카카오뱅크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카카오, SM 경영권에는 영향 없을 듯
카카오의 시세조종 의혹에도 업계는 에스엠의 경영권 구도 변동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해관계자들이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에스엠 경영권 분쟁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합의로 종료되면서, 카카오는 에스엠의 경영권을 가져가는 대신 하이브는 팬던플랫폼 '위버스'를 차지했다. 이에 지난 9월 에스엠의 유명 아티스트들이 '위버스'에 합류했다.
하이브는 최근 본격적으로 팬덤플랫폼을 통한 수익창출에 힘쓰고 있으며, 카카오는 새 에스엠 이사회와 경영진을 꾸려 그동안 멈춰있던 에스엠 성장플랜을 재가동했다.
이제 막 정상화 흐름에 올라탄 이해관계자들이 경영권 변동을 달가워할 리 없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사법리스크에 '추풍낙엽' 된 카카오그룹 상장사
카카오그룹의 사법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카카오 주가는 7거래일 연속 하락을 거듭해 23일 52주 신저가인 3만7850원을 기록했다.
전 거래일인 지난 20일 카카오페이(-5.02%), 카카오뱅크(-5.01%), 카카오게임즈(-0.21%) 역시 동반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한편,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23일 금융감독원 앞 포토라인에서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