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창문 밖으로 노란색의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선소에 도착했음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까지 대우조선해양이라는 사명이 새겨져 있었을 골리앗 타워에는 HANHWA(한화)라는 새로운 사명이 새겨져 있었다. 조선소 휴가 기간을 활용해 CI 작업을 했기 때문에 CI 변경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지난 27일 경남 거제도에 있는 한화오션의 거제사업장(구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을 찾았다. 이 곳은 150만평 규모로, 여의도의 1.67배에 달한다. 축구장으로 따지면 686개에 해당하는 크기다. 협력업체를 포함해 2만50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주주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조선소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부지가 워낙 넓어 도보로 이동이 힘들기 때문에 자전거를 주로 이용한다고 현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경쟁 조선소는 오토바이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거제조선소는 안전상의 이유로 자전거만 이용한다고 했다.
건물 외부에 크게 새겨진 '안전을 두고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는다' 는 문구가 와 닿았다. 한화오션은 사업장의 안전성을 제고하고,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숙련직 생산 인원 감소에도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수립했다.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선소, 데이터로 일하는 스마트한 조선소 문화가 어우러진 '그린&스마트 쉽야드(Green & Smart Shipyard)'가 그것이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은 크게 특수선 건조 구역, 상선 건조 구역, 에너지플랜트 건조구역으로 나눠진다. 특수선 건조 구역은 보안상의 이유로 둘러볼 수 없었고, 나머지 두 곳을 둘러봤다.
거제사업장에서 제일 처음 들른 곳은 상선 건조 구역 내 위치한 1도크다. 1도크에는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4척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었다. 용접작업 중인 숙련공들의 모습도 보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1도크는 초대형 유조선으로 가득 찼었다고 한다. 선발 교체 시기와 친환경 수요와 맞물린 LNG 선박의 수요 증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스마트 야드 전진기지 '디지털 생산센터'
한화오션의 '디지털 생산센터'는 한화오션이 추구하는 '스마트 야드'의 전진 기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2021년 조선업계 최초로 설립됐다.
디지털 생산센터는 공항의 관제탑 같은 개념이다. 거대한 거제사업장 생산 현장을 한눈에 파악하고, 문제 발생 시 신속하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디지털 생산센터는 건조 중인 블록 위치와 생산 공정 정보 현황 등을 드론과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생산관리센터', 바다 위에서 시운전 중인 선박 상태를 육지에서 확인하는 '스마트 시운전센터' 등 2개의 센터로 구성돼 있다.
현장 관계자는 스마트 시운전센터 시연을 선보였다. 플랫폼에 로그인하면 안벽 시운전, 해상 시운전,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 등 네 가지 화면이 나온다.
안벽 시운전에서는 메인 엔진 등 주요 장비의 실시간 성능을 모니터할 수 있다. 해상 시운전은 실시간으로 호선이 데이터를 취득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화면상 VLCC 호선, LNGC 호선 두 척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받고 있었다. 안벽 시운전, 해상 시운전을 통해 데이터를 받으면 각 호선에 대한 메인 엔진 로드에 따른 성능 변화, 파워 소모량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마트 시운전센터가 건조된 선박의 시운전 데이터를 보여준다면, 스마트 생산관리센터는 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데이터들이 어떻게 연결돼서 사용되는지 보여준다. 선행공정에서는 공정 상태 가동 현황 과시, 작업 계획 기반 시뮬레이션 분석 등의 기능을 제공하고 후행 공정에서는 건조 현황 가시화, 호선 세부 정보 가시화, 안벽 호선 배치 분석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울러 스마트 야드 구축 사례로 드론 사례를 선보였다. 권순도 한화오션 스마트야드 연구팀장은 "조선사 최초로 드론을 이용해 야드 블록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 GPS 위치 정보 기반의 기존 블록 추적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미래 친환경 선박 화물창 안전성 검증의 산실 '슬로싱 연구센터'
한화오션 슬로싱 연구센터 내 슬로싱 모션플랫폼 2대가 나란히 서 있다. [사진=한화오션]
현장 관계자는 설명에 앞서 크루즈 수영장에서 발생한 슬로싱 현상 사례를 보여줬다. 크루즈는 실제 흔들림이 크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수영장 내부의 물은 출렁거림이 점점 커지며 외부의 사람들을 덮치기까지 했다.
슬로싱 현상이란 구조물의 동요에 의해 기름이나 밸러스트수 등의 유체 액면이 탱크 내에서 동요하는 현상이다. 액화 화물창 내 슬로싱 현상이 심할 경우 벽면을 부숴버릴 수도 있다. 그만큼 화물창 형상 설계에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한화오션은 2004년도에 부산대학교에 연구센터를 설치해 20여 년간 운영하고 있고, 2019년에 슬로싱 연구센터를 조선소에 설립했다. 연구센터에는 모션플랫폼 장비 2개, 500여 개의 압력센서, 500채널의 데이터 획득장치 등이 설치돼 있다.
운영 효율화를 위한 무인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24시간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파도가 센 북대서양을 기준으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상범 한화오션 해양제품연구팀 책임연구원은 "다른 슬로싱 장비들과 다르게 한화오션의 슬로싱 장비는 세워져 있기 때문에 성능이 더 좋다"며 "시뮬레이터 자체가 슬로싱 장비용이 아닌 항공기 시뮬레이터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바꾸면 잠수함 시뮬레이션 등 다른 쪽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센터 내에는 형상이 다른 두 개의 장비가 작동 중이었다. LNG 운반선에 대한 탱크, 다른 하나는 액화이산화탄소(LCO2) 운반선에 대한 탱크를 실험 중이기 때문에 형상이 다르다고 현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20여 년의 운영을 통해 운영 노하우 및 해석 노하우를 확보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액화암모니아 운반선 또는 액화수소 운반선의 화물창 등 친환경 선박에 대한 슬로싱 연구를 수행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동화 시스템 개발 산실 '생산 혁신 연구센터'
한화오션의 탑재론지 용접로봇 [사진=한화오션]
한화오션은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생산 기술과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생산 혁신 연구센터는 용접기술·공장생산기술·도장 자동화 및 로봇기술 연구팀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 한화오션이 지능형 생산혁신 기술로 개발에 성공해 생산 현장에서 용접 및 가공 등 주요 공정에서 활용하고 있는 로봇은 협동 로봇을 비롯해 총 10여 개 분야 80여 개에 이른다.
한화오션은 자동화기반의 스마트 야드를 구축하기 위해 탑재론지 용접로봇, 무레일 EGW, 레이저 용접, 오비탈 GTAW용접·FCAW용접 등을 도입했다. 박종민 한화오션 용접기술연구팀장은 "이를 통해 용접 생산성을 올리고 노동강도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최초 극저온 연구시설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는 극저온 연구시설이다. 한화오션에 따르면 2015년 전 세계 조선소 중 최초로 만들어졌다.
통상 극저온 시스템 개발 시 액화기술을 이용해 유사 실험을 진행하는 데 그치지만, 해당 실험센터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해 실제 운항과 동일한 극저온 시스템으로 실험을 진행한다.
해당 시설에서는 LNG운반선에 탑재되는 BOG 재액화시스템, LNG 재기화시스템, 암모니아 연료 공급 시스템, LCO2 화물 운영 시스템에 대한 실증 설비들이 구축돼 있다.
특히 LNG 재액화장치는 LNG 운반선의 표준을 바꿨다고 평가받는다. LNG운반선에서 액체상태의 천연가스는 운송 중 기화해서 증발한다. 기존 선박에서는 이렇게 기화되는 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거나 태워버려야 했다. 재액화장치는 이런 증발가스를 모아 다시 액체로 바꾸는 장치다.
조두현 한화오션 에너지시스템연구팀장은 "한화오션은 2011년 독일의 엔진 업체 MAN B&W사와 협력해 통합테스트를 진행해 개발해 성공했다. 표준 기술로 인정받아 다수의 해외국가에서 기술료를 받고 있다"며 "현재까지 한화오션이 건조한 120척 이상 LNG운반선에 이 기술이 적용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