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오너 일가가 상속세 마련을 위해 계열사 주식 약 2조6000억원어치를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주사격인 삼성물산 지분도 처음으로 처분했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지난달 31일 하나은행과 유가증권 처분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 본사 [사진=삼성전자 홈페이지]

신탁계약은 금융회사에 주식의 매각, 매수 업무를 맡기는 것으로, 계약 기간은 지난달 31일부터 내년 4월30일까지다. 계약 목적은 '상속세 납부용'이라고 밝혔다.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 별세 이후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원에 이른다. 보통 11월 말까지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앞두고 지분 매각이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

계약 내용에 따르면 홍라희 전 관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삼성전자 지분 0.32%, 0.04%, 0.14%를 매각한다.

이 사장은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생명 지분도 매각한다. 이 사장은 같은 날 삼성물산 0.65%, 삼성SDS 1.95%, 삼성생명 1.16% 지분 매각을 위한 신탁 계약도 체결했다.

특히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 매각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매각이 주목된다. ​

2021년 초부터 오너가는 매년 약 2조원대의 상속세를 마련해 오고 있지만 아무도 삼성물산 주식을 팔진 않았었다.

이유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기인한다. 지배구조는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순으로 삼성물산을 통해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다.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 지분이 중요한 이유다.

이 사장이 삼성물산 지분을 매각할 경우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8일 기준 33.93%에서 33.28% 수준으로 줄어든다.

주주 입장에선 상속세 마련을 위한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부담) 이슈가 삼성 주요 계열사의 주가 하방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타 그룹들이 ​주주가치 제고의 일환으로 자사주 매입에 공을 들이는 것과 대비된다.

SK는 지난달 31일 시가총액 1% 규모의 자기주식을 매입하고 전량 소각한다고 발표했다. LG그룹은 CEO들이 회사 주식을 매입하고 있다. 올해 조주완 LG전자 사장 3000주, 권영수 LG에너주솔루션 부회장 1000주, 정철동 LG이노텍 사장 1000주, 이정애 LG생활건강 사장이 500주를 사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