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들의 공세에 부딪힌 삼성물산이 회사 측 제안에 찬성하는 내용으로 의결권 위임을 요청했다. 양측의 표 대결에서 헤지펀드 연합이 이길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삼성물산은 내달 15일 정기 주주총회 소집을 공지하고, 시티오브런던과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미국계), 안다자산운용(한국계) 등 5개 국내외 헤지펀드들이 주주제안한 '자사주 소각'과 '현금배당' 안건을 의안으로 상정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삼성물산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업무 대리인을 선정하고, 주주들에게 회사 측 제안에 찬성하는 내용으로 의결권을 위임해달라고 요청했다.
헤지펀드 연합이 주주총회에서 요구하는 주요 안건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보통주 1주당 4500원(우선주 4450원) 배당 등이다.
삼성물산은 2023년 회계연도 보통주 주당 2550원(우선주 2600원)의 배당을 결의했다. 삼성물산의 3개년(2023~25년) 주주환원정책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 수준에서 배당을 결정한다고 밝혔다.
주당 2550원이라는 배당은 배당정책내 최대치인 관계사 배당수익의 70%에 해당한다. 또한 전년비 총액이 10.9% 증가한 규모로 잉여현금흐름(삼성바이오로직스 제외)의 49% 수준이다.
자사주의 경우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지난해 2월 전량 소각을 결정했다. 삼성물산의 자사주는 2342만2688주로 유통주식의 총 12.62% 수준이다. 기존 주주환원정책에선 5년간 소각하기로 밝혔지만, 3년 내 소각으로 기간을 대폭 줄였다.
삼성물산은 의결권대리행사권유참고 서류를 통해 주주제안 내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삼성물산은 "주주제안은 삼성물산이 대내외 경영환경을 고려해 심사숙고 끝에 수립한 3개년 주주환원정책을 크게 초과하는 내용으로 경영상 부담이 되는 규모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주제안상 총 주주환원 규모는 1조2364억원으로 2323년과 2024년 삼성물산의 잉여현금흐름(삼성바이오로직스 제외) 100%를 초과하는 금액이며, 이러한 현금 유출시 미래 성장동력 확보 및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재원 확보가 어렵게 된다"고 덧붙였다.
삼성물산은 "따라서 이사회 제안에 찬성하는 내용으로 의결권을 회사에 위임하길 바라며, 대규모 재원 유출로 신성장 동력 확보 및 사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주주제안에는 반대하는 의결권 위임을 권유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헤지펀드가 표 대결에서 이기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헤지펀드 연합의 지분율이 1%대인데 비해 이재용 회장 등 13인, 자사주, 우호세력인 KCC 등 지분을 합치면 삼성물산 측 지분율은 55%를 넘어서게 된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삼성물산의 주가는 반응했다. 삼성물산의 주가는 지난 19일 52주 최고가인 17만1700원을 기록했다. 삼성물산의 주가가 17만원을 넘어선 것은 9년 만이다. 20일은 전 거래일 대비 4.75% 떨어진 16만2300원에 거래가 마감됐다.
표 대결에서 헤지펀드들의 승산이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임에도 일부 소액주주들은 헤지펀드에 의결권을 위임하거나, 주주제안에 찬성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한 주주는 "주당 4800원 배당은 이미 10년 전에 삼성물산이 한 약속이며,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일반 주주가 아니라 삼성물산이다"며 "지주회사격이라도 유보율 10만% 넘는 기업에서 배당률 5%도 안되는 4800원 배당이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