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단지 총수의 이혼 재판이 문제가 아니다. 재계 2위 SK그룹이 올 하반기 계열사 사업 통합, 일원화, 추진 중단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사전 정지작업은 마쳤다. 오는 28일 수펙스 회의에서 윤곽이 드러난다.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수뇌부가 어떤 승부수로 위기를 돌파할지 자본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SK의 성장부터 사업확장, 지배구조 성립과정 그리고 위기의 원인과 파훼법까지 주주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SK그룹은 탁월한 인수·합병(M&A) 능력으로 직물회사에서 재벌그룹으로 도약했다. 귀속재산부터 공기업, 반도체 기업까지 싹수가 보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수했다. 인수 후에는 과감한 투자로 승부사 기질을 드러냈다.
◆ 선경직물 불하와 두 차례 공기업 인수…재벌 진입
이 그룹의 모태는 선경직물이다. 최종건 창업주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이승만 정부 시절 일제 귀속재산인 선경직물을 불하받았다.
SK그룹은 군부정권 아래 민영화된 공기업을 인수하며 대한민국 재벌그룹으로 도약했다.
경기도 수원시 지주의 아들이었던 최 창업주는 경기도 용인시 출신 이병희(중앙정보부 서울분실장, 공화당 국회의원)와 친분이 있었으며, 이병희가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면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통해 박정희와 연이 닿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1년 9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는 선경직물에 방문하기도 했다.
1961년 9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경직물에 방문했다. 왼쪽 최종건 SK그룹 창업주, 오른쪽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SK)
이후 SK는 민영화된 공기업 2개를 인수하며 비약적으로 덩치를 키웠다.
최종건 창업주가 폐질환으로 사망한 후 SK그룹은 동생 최종현 2대 회장이 이끌었다.
최종현 전 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 시기인 1980년 SK그룹 매출(약 1206억원)의 5배가 넘는 대한석유공사(약 6281억원)를 인수했다. 대한석유공사 인수 후 SK그룹은 재계 10위권 밖에서 5위권으로 들어섰다.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은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그때 유공을 선경에 넘기게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SK그룹은 군부정권과 혼맥을 형성하기도 했다. 1988년 최종현 전 회장의 장남 최태원 회장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SK그룹은 1994년 그 시절 최대 이권사업이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 인수기업 최종심사에서 1위를 하였으나, 사돈기업 특혜 논란으로 사업권을 반납한 후 김영삼 정권 때 인수에 성공했다.
◆ 과감한 하이닉스 인수…재계 2위 도약
SK그룹은 하이닉스와 머티리얼즈, 실트론을 인수해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했다. 반도체 제조와 특수가스, 웨이퍼기업을 차례로 인수해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꾀했다. 그 결과 각 계열사 실적은 최대 10배 이상 성장했다.
이 회사는 2012년 3조4000억원을 투자해 하이닉스(前 LG반도체)를 인수했다.
당시 하이닉스 실적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하이닉스의 전신인 LG반도체는 1997년 외환위기로 현대전자에 넘어간 뒤 2001년 사명을 하이닉스로 변경했다. 그해 경영악화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 해 영업손실만 2조원을 기록했다. 2009년 4분기 매출이 2조7990억원로 회복되자 매각절차에 들어갔지만 인수비용 및 추후 설비투자 비용 부담 등으로 인수에 나서는 기업이 없었다.
SK는 하이닉스 인수 첫 해 3조9000억원 수준이었던 시설투자액을 2018년 17조원까지 늘렸다. 연구개발비도 2012년 9000억원에서 2019년 3조2000억원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SK하이닉스는 2012년 영업손실 2200억원의 적자기업에서 2018년 영업이익 20조8000억원의 효자기업으로 거듭났다.
2012년 3월 26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SK하이닉스 출범식이 열렸다. (사진=SK)
이후 SK는 반도체 소재기업을 인수해 하이닉스와의 시너지를 이뤄냈다.
2016년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특수가스 기업 OCI머티리얼즈를 인수했다. SK 편입 후 머티리얼즈 매출은 3000억원대에서 8000억원대로 두 배 이상 늘었다. SK머티리얼즈는 2021년 SK에 합병돼 지속적인 투자를 받고 있다.
2017년에는 LG실트론을 인수해 반도체 칩의 핵심 소재인 반도체용 웨이퍼 기술을 확보했다. LG그룹에서 영업이익 340억원에 불과했던 실트론은 SK에 편입된 이듬해인 2018년 영업이익 3803억원을 기록했다.
SK실트론에 투입된 R&D(연구·개발) 비용은 2017년 3338억원에서 지난해 9289억원으로 확대됐다.
◆ 그린 비즈니스로 미래성장동력 준비
최근 SK그룹은 차세대 에너지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2021년 그린수소 핵심 기술력을 보유한 미국 플러그파워(Plug Power)에 1조6000억원을 투자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이후 2022년 1월 플러그파워와 합작회사 SK플러그 하이버스(SK Plug Hyverse)를 설립해 아시아 시장 내 수소사업을 추진 중이다. SK플러그 하이버스는 연내 인천 액화 수소 플랜트 가동해 연 3만 톤가량의 액화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새로운 원전 모델로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한 투자도 이어졌다. SK는 2022년 빌게이츠가 세운 회사로 유명한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설계기업 테라파워와 포괄적 사업협력을 체결했다.
지난해에는 3900억원을 투입해 CCUS(탄소 포집·저장·활용) 혁신기술을 보유한 미국 회사 8Rivers(8리버스) 경영권을 인수했다. 8리버스는 저비용으로 99%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포집된 클린 전기와 블루 수소를 생산하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약 1조3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에 암모니아 생산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다.
블루오벌 SK 켄터키 1 공장. (사진=SK온)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도 진출했다.
SK는 2021년 SK이노베이션의 축전지부문을 물적분할해 SK온을 설립했다. SK온은 이듬해 포드자동차와 각자 5조1000억원씩을 투입해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 ‘블루오벌 SK’를 만들었다. ‘블루오벌 SK’는 2025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켄터키주에 2개, 테네시주에 1개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3개 공장을 합한 예상 생산능력은 120기가와트시(GWh) 이상이다.
SK온은 지난해 12월부터 국내 주력 생산기지 서산공장 신증설에도 1조7534억원을 투자하겠다고 공시했다. 2025년 완공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