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SK온을 살리기 위해 지주사 곳간인 SK E&S를 SK이노베이션과 합병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SK이노베이션 비지배주주들은 기업가치 기준을 지배주주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비상장사와의 합병으로 자신의 지분율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흑자전환 시기가 불투명한 SK온을 매각하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오는 17일 이사회에서 SK E&S와의 합병을 논의한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SK이노베이션·E&S 합병' 보도 관련 해명공시를 통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합병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고, 이와 관련하여 17일에 이사회를 열고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번 합병은 설립 이후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배터리 자회사 SK온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SK온은 설립 후 1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10개 분기 누적 적자 규모는 2조5876억원에 달한다. 적자 폭도 커졌다. 올해 1분기 영업손실 3315억원으로 직전분기(186억원) 대비 약 18배 증가했다.
이 과정에서 SK온 지원을 지원하던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재무까지 악화됐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3년 동안 SK온 설비투자에 22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올해 1분기 기준 부채는 55조원이며 순차입금만 15조원에 이른다. 연간 이자비용은 6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SK온에 7조5000억원을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
SK온에 자금을 지원해 주기 위해 강구한 다른 방법은 이미 이해관계자들의 치열한 공방 속에 무산됐다.
SK그룹은 앞서 비상장 윤활유 생산 업체 SK엔무브와 SK온을 합병해 SK온에 자금을 수혈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SK엔무브 2대주주인 IMM크레딧앤솔루션(ICS)가 적자회사인 SK온과의 합병을 반대하며 취소됐다.
이에 SK그룹은 지주사 곳간이던 비상장사 SK E&S를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과 합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K E&S는 지난해 말 기준 SK 지분율 90.0% 기업으로 SK에 연간 수천억원 대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비롯해 태양광·풍력·수소 등의 사업을 하는 SK E&S는 지난해 매출 11조원, 영업이익 1조3000억원을 거뒀다. 준수한 실적을 바탕으로 2021년 2610억원, 2022년 4816억원, 2023년 3486억원을 SK에 배당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 비지배주주들은 이번 합병으로 지분율이 하락될까 걱정한다.
통상 상장사의 경우 최근 주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기업가치가 메겨지나, 비상장사인 SK E&S의 기업가치는 지배주주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최근 주가에 따라 10만원 초중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SK이노베이션 주가는 SK온의 계속된 적자로 2021년 27만원대에서 최근 10만원대로 3분의 1토막 가까이 하락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사의 합병가액은 합병에 대한 이사회 결의일이나 계약체결일 중 빠른 날의 전일을 기산일로 하여 과거 1개월, 1주일, 직전일의 종가를 거래량으로 각각 가중평균한 후 산술평균한 가격을 기준시가로 정하고, 비계열사 간 30%, 계열사 간 10% 범위에서 할인 또는 할증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비상장사인 SK E&S의 경우 지배주주의 입맛에 따라 회사의 순자산, 순손익, 매매사례가액 등 다양한 기준을 고를 수 있다. 어떤 기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SK E&S의 기업가치는 SK이노베이션의 4분의 1토막에서 2배까지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SK E&S의 기업가치는 연결 순자산 기준 SK이노베이션의 4분의 1토막도 되지 않지만, 매매사례가액이나 연결 순손익을 기준으로 하면 SK이노베이션의 2배가량으로 늘어난다.
SK E&S이 지난 2021년 11월 발행한 상환전환 우선주(RCPS)의 1주당 발행가는 58만6182원이다. RCPS는 전환권 행사 시 보통주 2주로 전환된다. 이 경우 보통주 1주당 가치가 29만3091원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업계는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 역시 예외적으로 주가가 자산가치(BPS)보다 낮을 경우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지만, SK 입장에서는 90% 지분을 가지고 있는 SK E&S의 기업가치를 극대화 시켜 합병비율을 정할 것으로 전망한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지주사 SK는 SK이노베이션 지분 36%와 SK E&S 지분 90%를 가지고 있다. 두 회사 합병 비율에 따른 합병회사에서 SK의 지분율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이 1 대 1일 때 63% 수준에 그치지만, 합병비율이 1 대 2가 되면 72%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으로 단순 계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사는 시가, 비상장사는 이런저런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이게 공정한지 안 한 지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이사들이 (합병비율을) 결정하는 데 이사들에게 주주의 재산권을 보호할 의무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예 SK온을 매각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았던 2021년 10월 배터리 사업부인 SK온을 물적분할했다. 상장을 통해 수조원대 자금을 조달하려는 속셈이었다.
문제는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업력이 짧은 후발주자였던 SK온이 생산 초기의 수율(생산품 중 불량이 없는 비율) 확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때에 배터리 시장이 나빠져 흑자 전환이 시기를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2020년 전년대비 2배로 폭발적으로 늘었으나 2021년부터 성장률이 매해 56.8%, 33.4%, 19.0%로 점차 떨어지며 둔화곡선을 그리고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와의 경쟁 심화로 국내 배터리 3사의 시장점유율도 줄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국내 배터리 3사의 시장점유율은 전년동기대비 1.4%포인트 하락한 46.8%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중국 닝더스다이(CATL)의 시장점유율은 전녀동기대비 11.4%포인트 증가한 26.9%를 기록하며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배터리 주요 원자재인 리튬 가격마저 과잉공급으로 하락하며 수익성도 악화됐다. 블룸버그 산하 조사기관 블룸버그 NFE(New Energy Finance)에 따르면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백 가격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평균 14% 하락했다. 또한 윌스트리트저널은 2024년 연초 리튬 가격이 1년 전보다 90% 하락했다고 발표했다.
일부 주주는 “위약금도 없는 (SK온) 수주잔고는 소용이 없다. 능력 있는 기업에 지분 절반과 경영권을 넘기면 10조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FI 투자자에게 3조원 위약금 물어주고 나머지를 주주환원에 사용하라”고 주장했다.
한편, SK온은 오는 2026년까지 상장하지 않으면 재무적투자자(FI)에게 수조원을 물어줘야 하는 형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5월 MBK투자파트너스와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이스트브릿지 컨소시엄을 통한 추가 프리 IPO(Pre-IPO) 계약에 의결했다. SK온은 이 프리 IPO를 통해 최대 1조44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해당 프리 IPO에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FI)는 기존 조건과 마찬가지로 오는 2026년까지 'Q-IPO(퀄리파이드 IPO·Qualified IPO)'를 성사하는 조건을 달았으며, 드래그얼롱(Drage-along, 동반매각청구권)과 풋 조건도 추가했다.
풋옵션은 투자자가 미리 정한 가격으로 주식을 다시 되팔 수 있는 옵션이며, 동반매각청구권은 투자자가 보유지분을 팔 때 대주주나 창업주의 지분까지 끌어와 다른 투자자에게 매도할 수 있는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