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이 보유한 자사주 전량을 교환사채(EB)로 발행하겠다고 나서면서 시장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회사 측은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이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주주가치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주주의 지배력 회복 기반을 조성하려는 수단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자사주 27만 1769주(지분율 24.41%)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3186억 원 규모의 EB 발행을 의결했다. 교환 대상은 자사주 전량이며, EB 인수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활용해 의결권이 살아 있는 지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인수자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도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다.
태광산업의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소수 주주권을 보호하겠다는 새 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반한다며, 가처분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이번 결정은 경영상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과 주주 보호 정책을 회피하려는 꼼수이자 위법”이라며 “특히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EB 발행은 교환권 행사 시 사실상 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한 효과를 지녀 기존 주주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 역시 주주들에게 EB 발행의 필요성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발행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태광산업이 외부 차입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2025년 1분기 말 기준 현금 및 금융상품 등 현금화 가능한 자산이 1조4000억 원(별도 기준 1조1000억 원)에 달하고, 부채비율은 16%(별도 기준)에 불과하다. 또한 태광산업은 별도 재무제표 기준 외부 차입금도 없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어 “교환사채 발행 목적이 자사주 처분을 통한 우호 주주 확보로 의심된다”며 “자사주 전부를 활용해 교환사채를 발행할 정도의 급작스러운 사정 변경이 생겼다고 볼 만한 재무적 정황은 어디에도 없다. EB 인수자는 현 지배주주에게 우호적인 투자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EB는 분할 매각과 만기 연장이 가능해 향후 주주총회에서 대주주의 과반 의결권 확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태광산업은 EB 발행 논란이 불거지자 하루 만에 1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 로드맵을 공개하며 여론 무마에 나섰다. 그러나 해당 계획은 이미 2022년 그룹 차원에서 발표된 것이며, 이후 실현되지 않은 투자 약속을 이제 와서 재포장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태광산업 소액주주연대는 유태호, 정안식, 안효성, 최영진, 오윤경 이사 등을 배임 및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한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태광산업이 지난달 27일 제출한 ‘자기주식 처분결정’과 ‘교환사채권 발행결정’에 대해 정정명령을 부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