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자사주를 다량 보유한 상장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경영 유연성 저하, 재무 부담, 위헌 논란 등 다양한 우려도 제기된다.
18일 정치권 및 업계에 따르면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고, 예외적으로 보유할 경우 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지난 16일 대표 발의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범여권이 상법 추가 개정을 통해 입법을 추진 중인 사안이다. 같은 당 김남근 의원도 자사주 의무 소각 기한을 1년으로 정한 개정안을 발의했으며,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소각 기한을 6개월로 설정한 법안을 내놓았다.
일부 기업이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있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일정 기간 내 소각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이 해당 법안들의 골자다.
다만 임직원 보상이나 법령상 의무 이행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보유가 허용된다. 이 경우에도 보유 목적과 기간, 처분 계획 등을 이사회에서 결의하고, 반드시 공시하도록 했다.
최근 집계에 따르면 자사주 비중이 30%를 넘는 상장사는 17개에 달한다. 이들 기업은 법안 통과 시 대규모 소각 의무에 직면할 수 있다.
2025년 1분기 기준 자사주 비중이 가장 높은 상장사는 인포바인으로, 전체 주식의 54.18%를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다. 신영증권도 53.10%로 절반을 넘는다.
이어 ▲일성아이에스(48.57%) ▲조광피혁(46.57%) ▲매커스(46.23%) ▲텔코웨어(44.11%) ▲부국증권(42.73%) ▲모아텍(35.77%) ▲엘엠에스(34.97%) ▲대동전자(33.36%) ▲영흥(32.71%) ▲SNT다이내믹스(32.66%) ▲롯데지주(32.51%) ▲전방(32.17%) ▲대한방직(31.84%) ▲제일연마(31.83%) ▲대한제강(30.88%) 등이 뒤를 이었다.
개인투자자 권익 보호 단체 등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 재계는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방어 수단이 약화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 5월 논평을 통해 “자사주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될 수 없다. 자사주는 지배주주의 자금이 아닌 회사의 현금으로 매입한 것이다”라며 “자사주가 금고주 형태로 장부에 남아 있으면 대규모 주가 디스카운트 요인이 된다”고 밝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가 기업의 고유 자산임에도 법적으로 소각을 강제한다면, 이는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