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쥬란’으로 유명한 제약사 파마리서치의 인적분할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투자자들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와 상속세 절감을 위한 꼼수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쪼개기 상장 등 자본시장의 불공정 해소를 위해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에 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6일 관련 논평을 통해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 상장되는 중복상장 문제는 한국 증시 디스카운트 핵심 요인이다”며 “기업거버넌스 요체는 주주권리 보호, 투명성 제고 및 예측 가능성인데 이번 계획은 창업자 정상수 이사회 의장 입장만 반영되었지 일반주주 이익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 계획은 “쪼개기 상장”에 대해 수차례 경고한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의 자본시장 정책 기조에 맞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상법개정을 통해 이사회 독립성을 확보하고 투자자 보호가 필요함을 새삼 일깨우는 사례”라고 거듭 꼬집었다.
파마리서치는 지주사인 '파마리서치홀딩스'(가칭)를 두고, 의약품·화장품 등 실제 사업을 하는 신설 법인 '파마리서치'(가칭)를 떼어내는 내용의 인적분할 계획을 지난 13일 밝혔다.
코스닥 상장사인 파라리서치는 미용 의료기기 및 화장품 브랜드 '리쥬란'으로 유명한 제약사다. 지난해 매출 3501억원, 영업이익 1261억원, 순이익 889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최대주주는 창업자인 정상수 이사회 의장으로, 30.4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소액주주가 보유한 지분은 50.76%다.
거버넌스포럼은 이번 파마리서치의 분할 계획에 정상수 의장의 입장만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포럼은 “67세인 정 의장은 상속증여세금 절세를 위해서 PBR 10배인 현 상장사보다, 분할 후 PBR을 1배 이하로 관리할 수 있는 지주사에 본인의 지분을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74:26으로 정해진 분할비율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포럼은 “시장가치를 반영한 분할비율은 5:95가 합리적으로 보인다”며 “일반적인 지주사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 반영하면 지주사 기업가치는 잘해야 PBR 0.7배에 시총 2800억원일 것”이라고 밝혔다.
포럼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압박”이라며 “동사 일반주주를 극히 고평가된 지주사에서 뛰어내리도록 유도하는 것은 침해 요소”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외국 사모펀드 CVC캐피탈에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해 2000억원을 조달한 배경도 의문이다. CVC는 파마리서치 지분 10.1%를 보유한 2대주주로, 이사회에도 2명의 자사 출신 임원을 두고 있다.
포럼은 “해외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파트너라 하지만, 자금이 굳이 필요 없는데 10% 지분 희석화와 두 명의 이사 자리를 내주는 딜을 CVC와 8개월 전 체결한 배경이 의문”이라며 “작년 실사 과정에서 회사의 분할 및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시나리오가 논의되었는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투자자들과 소액주주들도 파마리서치의 인적분할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파마리서치의 지분 1.2%를 소유한 소수주주 머스트자산운용은 지난 24일 파마리서치와 CVC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 반대 입장을 밝혔다.
머스트자산운용은 "파마리서치는 분할되는 두 회사의 신주인수권이 종전의 전체 주주에게 주어지는 인적분할을 택해, 자본시장에서 문제 됐던 물적분할과 다르다는 주장을 펴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인적분할 뒤 현물출자로 모회사·자회사를 모두 상장시키는 지배구조를 계획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주인수권 관련 차이점이 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중복상장이며 본래 기업가치보다 할인돼 시장에서 거래될 수밖에 없다"며 "애초 지주회사가 필요했다면 100% 자회사로 물적분할을 하고 해당 자회사는 재상장을 안 했으면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머스트자산운용은 “모회사의 대주주 지분율은 분할 전 현재의 약 30%에서 크게 증가하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대주주가 회사를 지배하는 지배구조의 효율성이 좋아지는’ 변화라는 점과 ‘전체주주의 거버넌스는 안 좋아지는’ 변화라는 점이 충돌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맥쿼리증권도 보고서에서 “지배 주주에게만 유리한 불공정한 방안으로서 불공정한 분할 비율로 주주에게 가치 없는 껍데기 주식만 남긴다”며 “회사가 최대 주주인 정상수 이사회 의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는 이번 분할이 형식은 인적분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우회적 물적분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액트는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 여부, 현물출자 거래의 공정성 여부, 이해상충의 구조적 문제 등을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면밀히 분석하고, 주주연대와 법적 검토를 통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